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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375>바다로 세계로! -5- 육군17연대 철수작전

sej57 2018. 4. 17. 11:32

<375>바다로 세계로! -5- 육군17연대 철수작전

육군17연대 옹진반도 철수 작전은 일찍부터 해군의 과제로 인식된 문제였다. 해군에서는 전쟁 발발 전부터 유사시 해군이 그 일을 맡아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해 온 터였다.

17연대는 38선 최서단인 황해도 옹진반도에 배치된 육군부대로 남침 상황이 발생하면 제일 먼저 적의 공격을 당하게 되는 위치다. 지리적 특성상 육로가 막히면 마치 섬에 갇힌 꼴이 돼 바다 말고는 퇴로가 없는 곳이다.

“부장(副長), 저기 옹진반도에 육군17연대가 주둔하고 있소. 유사시에는 저 부대가 철수해야 하는데 육군에 선박부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도리 없이 우리가 떠맡을 일이 아니겠소. 그 일을 하려면 구축함의 함포 지원이 필요한데 우리는 구축함이 없으니 큰일이오.”

사관학교 졸업과 동시에 충무공 부장 보직을 받아 승선 근무할 때 정장(艇長) 이희정 중령이 자주 털어놓던 말이다. 그는 쌍안경으로 옹진반도와 해도(海圖)를 번갈아 보면서 “우리 해군은 언제나 상륙작전을 할 수 있는 전력을 갖게 되나” 하고 한탄했다.

1948년 남과 북에 각각 독립 정권이 들어선 뒤 옹진반도는 남북이 가장 첨예하게 대치하는 전선이 됐다. 양측 주둔군 사이에 신경전이 자주 발생한 이 지역에서 49년 전쟁에 준하는 사태가 발생해 더욱 국민의 주목을 끌었다.

그래서 25일 아침 작전회의 때 육군의 요청이 없었지만 17연대 철수 문제가 자연스럽게 안건이 됐다. 뒤에 작전국장이 된 이중령은 수시로 나와 작전과장에게 유사시 17연대 철수 작전 계획을 수립해 놓도록 당부했다. 지상 전투에 조예가 깊은 작전과장 김용호 소령은 “아직 육군으로부터 공식 요청은 없지만 해군은 반드시 사전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에 공감한 나도 동조했다.

쉽게 결론이 도출되자 즉시 작전이 개시됐다. 인천 경비부 사령관 유해거(柳海巨) 중령에게 17연대 철수 작전 거행 명령이 하달됐다. 다행히 해군의 유일한 LST 함정인 801함이 서해 해역에서 다른 임무를 수행 중이어서 즉각 작전에 투입할 수 있었다.

801함 하나로는 부족할지 모른다는 판단에 따라 인천 일대의 민간 선박 징발령도 내렸다.

즉각적인 구출작전이 아니었으면 17연대 병력은 전멸 위기에 처해 있었다. 25일 새벽 4시 전차 10여 대를 앞세운 인민군의 공격을 받은 17연대는 구식 소총과 수류탄으로 응전했다. 그것은 마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다.

개성쪽 퇴로가 막힌 연대 병력은 도리 없이 해안으로 밀려나 독 안에 든 쥐 꼴이 됐다. 옹진 강령 지역에서 이틀 동안 벌어진 방어전에서 17연대는 수백 명의 인명 피해를 내고 지리멸렬 상태에 빠져 있었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해군의 구출 작전이 시작됐다. 한밤중에 해군 LST에 실려 나오는 17연대 장병들의 모습은 패잔병 모습 그대로였지만 3개월이 채 못돼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작전에 참가해 용맹을 떨침으로써 명예를 되찾게 된다.

강화도에 상륙한 뒤 연대장 백인엽 대령은 즉시 부대를 추슬러 오산전선 방어전에 참여했다가 미7사단 상륙군 지원 부대로 상륙 작전에 참가하는 영광을 얻는다. 뒷날 부산에서 이 소식에 접한 나는 백대령의 명예 회복을 마음 속으로 축하해 줬다

출처 : 해병대 독립군 충실한 해병
글쓴이 : 충실한해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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