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스크랩] 김신조

sej57 2016. 2. 14. 10:18

김신조 어울림 김신조 사건 1.21 사태 무장공비 청와대

침투사건 무장공비 김신조 정찰국 124군

 

 

1968년 1월 21일 온 국민을 전쟁의 공포에 휩싸이게 했던 무장공비 청와대 침투사건!

 31명의 무장공비 중 남한에 살아남은 단 한 사람 김신조!

기자회견 당시 ‘박정희 멱따러 왔수다’라는 한 마디로 온 국민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그... 북한 무력부 총 정찰국 124군 부대 엘리트 출신의 특A급 무장 게릴라였던 그가

평범한 남한 시민의 삶을 택한 결정적인 이유는?!

 

 


청와대 정문 500m 앞에서 벌어진 숨 막히던 총격 현장에서 구사일생 살아난
비하인드스토리와 오로지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투항을 결심했던 ‘무장공비’의
탈을 벗은 ‘인간’ 김신조의 지난 45년 굴곡진 인생 이야기!

북에 두고 온 가족을 뒤로 하고 남으로 전향, 북한의 특급 군사 기밀을
남한정부에 제공했던 김신조! ‘1968년 대한민국 군 복무 기간 6개월 연장!’,
‘향토 예비군 및 특수부대 창설!’, ‘주민등록번호제를 시행’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대한민국 역사의 한 획을 그었지만 그의 앞에 닥친 현실은
참혹하기만 했는데...

45년 넘게 달고 산 ‘무장공비’ 꼬리표... 아내와 자식마저 손가락질을 받게 할 수 밖에

 없었던 ‘남파 공작원 출신 아버지’ 김신조의 가슴 저린 고백!

그리고... 남으로부터는 ‘무장공비’로, 북으로부터는 ‘변절자’라 불리며 어느 곳에도

안주할 수 없었던... 한순간도 자유로울 수 없었던 ‘김신조’의 삶!

‘술’과 ‘폭언’을 일삼았던 그의 망가진 삶을 일으켜 준 것은 다름 아닌
‘가족’이었는데... 혈혈단신 남으로 넘어 와 이제는 아내와 자식들, 손주들까지...
한 가정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목회자로...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이자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前남파 공작원 김신조의 삶을 만나본다!

 

무장공비 청와대 침투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김신조는 공산당원의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당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했다고 한다.

스무살의 나이에 북한 무력부 총정찰국 124군부대 소속 특수요원으로 차출이 되었다.

김신조는 박정희 대통령의 암살 지령을 받도 침투를 했지만 작전에 실해하고

투항을 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서 68명의 한국인이 사망을 했고 66명이 부상을 당했다.

북한군 31명중에 29명은 사망을 했고 1명은 생포를 했다. 다른 한명은 탈장이 되는

부상을 입었으나 남한으 포위망을 뚫고 38선을 넘어 가면서 3명의 미국 헌병을

사살하고 3명의 헌병을 부상을 입히고 다시 북한으로 넘어 갔다.

이렇게 다시 북한으로 돌아간 사람이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 책임을 지고 있는

선전 부통국장인 박재경이다.

 

 

얼마전에는 김신조 루트라고 해서 무장공비 침투사건 당시 미 2사단 철책을 뚫고

경기도 연천 매현리에서 서울 청운동까지 청와대로 들어 온 침투한 길을

김신조 루트라고 한다.

 

현재 김신조는 한나라당 북한 인권 및 탈북자,납북자 위원회 고문및 서울성락교회

목사로 활동을 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목회 활동을 하면서 여러기관이나 회사 등을 다니면서 강연을 하고 있다.

  김신조 사건 이후로 실미도와 향토예비군이 창설이 되었다.

출처 : 바다낚시 이야기
글쓴이 : 갯바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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